수호가 당신의 이름을 호명하고 얼마 있지 않아 세 번째 버스가 저 멀리서 빗속을 헤치고 다가와 정차합니다.
버스가 오는 건, 실은 누가 이름을 부르든 상관 없었던 걸까요?
하지만 지금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전광판에서 봤던 인도자라는 말은 누가봐도 수호를 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추측 뿐입니다.
버스는 지금까지 승차했던 버스와 달리 커다란 2층 버스입니다.
두 사람 앞에 멈춰선 버스의 탑승구가 열립니다.
역시, 타고싶지 않아요. 타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수호가 겪은 일을..이런 식으로 다시 함께 겪고싶지 않습니다.
수호가 당신에게 손을 내밉니다.
안수호:괜찮아, 내가 같이 있잖아.
난 네가 길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주기로 했는걸.
무서워할 거 없어.
그 이유 모를 낯선 충동은, 빗물보다도 잘게 흐드러져 떨어지는 수호의 목소리에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집니다.
그저 온 세상을 적시는 빗소리와 끝없는 안정감만이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합니다.
당신은 수호가 내민 손을 기꺼이 잡고, 두 사람은 세 번째 버스에 올라탑니다.
버스의 전면 유리창에 붙어있는 라벨에는 '0000번'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듣기>판정
연시은:
듣기 Roll
기준치:
90/45/18
굴림:
3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삐―.
아까 전 들었던, 단말마와 같은 이명이 귓가를 울리고 사라집니다.
아니, 이 소리는 이명이 아니라.. 마치 기계음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세번째 버스(0000번, 1층)
두 사람이 올라타는 것과 동시에 버스가 움직입니다.
버스는 지금까지의 버스와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으며, 기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안에 존재하는 탑승객은 그저 당신과 수호, 두 사람 뿐입니다.
버스 내부에는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보이지만, 입구가 닫혀있습니다.
닫혀있는 입구의 문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걸려있는 것이 보입니다.
당신은 본능처럼 품 안의 국화 꽃다발을 살핍니다.
조금 시들어있었던 국화 꽃다발은, 전보다 더욱 생기를 잃고 처량히 바래진 꽃잎의 색을 띄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수호가 먼저 창가 좌석에 앉습니다.
창가 좌석에 앉은 수호는 어딘가 지쳐보이고, 침체 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당신은 무언가 멍해보이는 수호의 옆좌석에 앉았습니다.
연시은:무슨 생각해?
안수호:..어?
음..별로 아무 생각도..
(차창 밖을 쳐다보는 표정이 심란해보인다)
연시은:안수호, 너 여전히 거짓말은 잘 못 치는구나.
다 티나.
안수호:뭐, 뭐가 티난다는 거야?
연시은:뭐, ...됐어.
네가 말하기 싫다면 하지 않아도 돼.
안수호:.....휴.
너랑 모처럼 오랜만에 다시 만났는데..
침울해하기나 하고....
(중얼) 이럴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이럴려고 널.....
수호는 괴로워보입니다.
연시은:상관없어.
만난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해.
안수호:..(피식) 그치..맞아.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집중 해달라고 했으면서..
오히려 네가 나보다 더 침착하네..
역시 너답다.
연시은:네가 부탁했으니까.
들어줘야지.
안수호:....(입술을 살짝 꾹 다물며, 고개를 숙였다.)
<관찰>판정
연시은:
관찰 Roll
기준치:
95/47/19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당신이 수호를 따라 고개를 숙이자, 버스 바닥에 무언가 떨어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좌석 바닥에는 책 한 권이 떨어져있습니다.
책이라기보다는 얇은 책자에 가까워보입니다.
푸른 색의 표지에는 아기자기한 회전목마 그림이 프린트되어 있습니다.
제목 또한 'merry go round' …
당신은 조심스레 책을 펼쳐봅니다.
merry go round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하며, 막 망자를 위한 길로 들어서기 직전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흔히 인생의 주마등과 마주하곤 한다. 지금껏 살아왔던 인생이 눈 앞에서 한 차례 영화처럼 펼쳐지는 현상을 주마등 현상이라고 일컫는다. 죽음의 끝에 당도한 산 자여, 그대의 삶이 적어내려간 필름의 길이를 돌아본 적이 있는가.
책자의 내용을 읽던 도중, 당신은 갑작스러운 강한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빛도 한줄기 들지 않는 맨 밑바닥의 어둠 속에서, 당신은 환각을 마주합니다.
환각 속에 삶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 가장 슬펐던 순간이..
그리고 죽어서도 잊지 못하리라 여겼던 반짝이던 삶의 조각.
어느 순간 내 삶에 끼어들어 뿌리를 내리고 침범한 너, 안수호와의 첫만남.
…빼놓을 수 없는 여러 기억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함께 하교 후 당신의 집으로 향해 게임 내기를 하던 기억.
오랜 시간 잠들어있다 눈을 뜬 수호의 앞에서 눈물을 터뜨렸던 기억.
수호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 고조되는 행복감을 버티지 못하고 웃어버렸던 순간.
한동안 빠른 속도로 영상이 스쳐 지나가고 잠시간 필름이 뚝 끊기며 말간 어둠이 지속됩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때, 다시금 빛처럼 터져나오는 영상이 하나.
두 사람의 모습입니다.
수호와 당신,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함께 어디론가 향하고 있습니다.
차창 바깥으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해보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한없이 다정하며, 애정이 넘치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따스한 손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습니다.
고즈넉한 빗소리의 향연마저 서로간의 애정에 담뿍 물들어 더 없이 사랑스럽게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쾅―!!
반대편 차선을 지나치던 트럭과 버스가 갑작스레 충돌합니다.
직후 들려오는 것은 커다란 굉음.
쇠가 굽어들고 절단되는 듯한 소름끼치는 금속음.
무언가 터지는 소리, 날아가는 소리, 어딘가에 들이박는듯한 충격.
온 몸의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겨져 나가는 듯한 생생한 통증.
쉼없이 흔들리고 요동치는 어두운 화면 사이로 그런 당신을 한 점 망설임 없이 끌어안는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아니, '누군가'라고 특정지을 필요도 없습니다.
수호입니다.
수호가 연시은, 당신을 끌어안았습니다.
암전하는 버스의 내부를 어둡게 띄우며, 영상의 하단에 글자 하나가 떠오릅니다.
당시의 날짜를 가리키는 듯 흐릿하게 떠오른 글자는...1년 전의 오늘입니다.
당신은, 그제야 지금까지 서리가 내린듯 희뿌옅기만 하던 기억 하나가 마치 퍼즐조각처럼 맞달라 붙습니다.
1년 전, 돌이킬 수 없는 사고의 현장에 존재하던 것은 수호만이 아니었습니다.
수호와 당신, 두 사람이 함께 있었습니다.
당신을 제외한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던 그 참담한 사고의 현장에서, 수호는 당신을 끌어안고 죽었습니다.
오로지 당신을 살리기 위해…
몸이 다 회복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 시점에서 말이에요.
이건… 주마등인 게 분명합니다.
인생의 주마등 속에서 사고의 진상을 목격한 당신,
이성 –10
일순 강한 충격과 함께 주마등이 돌아가던 공간이 산산이 부숴져내립니다.
삐―――.
무너져 내리는 공간 속에서, 조금은 길게 이어지는 기계음을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꼭 말단부위부터 심장까지 강한 전기가 흘렀다 사라지는 것만 같은 감각.
그 조각들과, 끊임없이 퍼붓는 빗소리에 한데 뒤엉켜있던 환각들이 이윽고 수몰됩니다.
.
.
.
당신은 흔들리는 버스 좌석에 앉은 채 눈을 떴습니다.
1년 전의 그 날, 수호는 당신을 끌어안고 대신 죽었던 겁니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면, 수호는 창가에 머리를 기댄채 곤히 잠들어있습니다.
수호는 깊게 잠들어있는 것인지, 깨워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덜컹.
버스가 방지턱을 밟고 흔들립니다.
그에 맞춰, 짤그랑.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미약한 금속음이 들려옵니다.
바닥을 살피니 회전목마 키링이 달려있는 작은 열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열쇠라... 혹시 이건, 잠겨있는 2층으로 향할 수 있는 열쇠일지도 모르겠네요.
>열쇠를 사용하여 버스 2층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연시은:...
(2층으로 이동한다.)
2층으로 향할 수 있는 입구의 문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걸려있는 것이 보입니다.
자물쇠에 열쇠를 끼워넣으니, 금속이 맞물려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버스 2층이 개방되었습니다.
세번째 버스(2층)
버스의 2층으로 들어서면, 그 장소는 이상하게도 단촐한 방과 같은 형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부에는 책상과 책장, 그리고 침대 하나가 놓여있네요.
[책상]과 [책장], [침대]를 살필 수 있습니다.
연시은:(책상을 살펴본다.)
[책상]
깔끔하게 정돈되어있는 책상 위에는 그 흔한 필기도구도, 책도, 사용감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끔하다 못해 쓸쓸해 보이는 책상 한가운데 반으로 접혀 있는 쪽지만을 한 장 발견합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 죽음이 머지 않은 영혼의 길을 인도하는 사자는 생전 그 사람이 가장 사랑했던 자의 얼굴로 나타나 여로를 안내한다.
[책장], [침대]를 살필 수 있습니다.
연시은:(책장을 살펴본다.)
[책장]
책장에는 책이 한가득 꽂혀있지만, 그 어느 것도 당신이 읽을 수 없는 것들 뿐입니다.
검은 색의 책등만이 마치 밤하늘처럼 빼곡이 즐비합니다.
<자료조사>,혹은 <관찰>판정
연시은:
관찰 Roll
기준치:
95/47/19
굴림:
8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책을 살짝씩 꺼냈다 꽂아보니, 책들 사이에 꽂혀있는 쪽지를 한 장 발견하였습니다.
죽음의 이름은 곧 다음 생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기 전까지의 영원한 안식을 의미한다.
그 안식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사자는 산 자의 이름을 세 번 호명하게 된다.
세 번의 호명 끝에 산 자는 비로소 망자가 된다.
>[침대]를 조사할 수 있습니다
연시은:(침대를 살펴본다.)
[침대]
꼭 병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병실용 침대입니다.
다가서면 커튼이 반쯤 쳐져있습니다.
커튼 위로 핀이 꽂힌 명찰 하나가 매달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명찰에는 '연시은 님'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문득 당신은 뼈를 치고 사라지는 기시감에 휩싸입니다.
조금 급한 손길로 커튼을 완전히 걷어내면 드러나는 것은 쓸쓸하기 짝이 없는 병실의 매트리스 침대.
침대 주변으로 즐비한 온갖 의료 장치들,
그 사이에 푸른색 담요를 덮고 누워있는 사람은 입가에 산소마스크를 뒤집어 쓴 채 눈을 감고 있습니다.
당신은 형용할 수 없었던 기시감의 정체와 마주합니다.
병상에 누워 끊임없이 즐비한 의료 기계들 틈 사이에서, 산소 호흡기를 뒤집어 쓴 채 실낱같은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그 사람은… 연시은, 당신입니다.
<듣기>판정
연시은:
듣기 Roll
기준치:
90/45/18
굴림:
1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삐―.
문득 아주 가까운 자리에서 익숙한 기계음이 터져나옵니다.
당신은 병상 옆에 자리하고 있는 심전도 기록장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기록장치의 모니터 위로 미약한 파도같은 당신의 심전도 곡선이 출력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마치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연약하고도 미약한 곡선이요.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던 수많은 이명의 정체는,
심전도기록장치의 기계음 이었던 것입니다.
당신을 감싸안고 죽어버린 수호의 희생이 무색하게, 당신 또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버스는 무언가요.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목적지로 향하고 있는 것이 맞는걸까요.
이성-6
여긴, 당신의 꿈 속이 아닙니다.
이 버스는, 스스로가 수몰되어가는 버스.
'영원한 안식'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 있는 것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
.
.
어쩐지 몸이 강하게 흔들리는 것만 같은 느낌에 눈을 감았다 떠올리면, 흐릿하고 침침한 시야 너머로 희기만 한 천장이 들어옵니다.
삐. 삐. 삐. 벨이 터지는 소리, 장치에서 터져나오는 다급한 기계음 소리, 위급한 환자의 위치를 알리는 병원의 방송 소리,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뭉개지고,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그리고 당신은, 다시 눈을 감습니다.
.
.
.
마지막 정류장
쏴아아.
고요하고 적막하게 수몰하는 세상을 울리는 빗소리.
부드럽게 머리칼을 쓸어주는 손길에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정류장입니다.
품에 안고 있는 국화꽃은 이제 생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시들어 있습니다.
안수호:일어났어?
연시은:...응...
귓가에 내려앉는 다정한 목소리. 당신은 또 다시 수호에게 기댄 채 잠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개를 들어올리면 아주 자연스럽게도, 정류장의 상단에 자리하고있는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까지의 전광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의 노이즈도 끼어있지 않다는 것.
이제는 온전히 모든 글자들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
인도자가 인도를 받을 자의 이름을 호명할 때, 마지막 버스가 도착합니다.
버스가 오는 신호는 수호와 당신, 누가 이름을 부르던 상관 없던 게 아니었던 겁니다.
그러고보면, 수호는 지금껏 당신의 이름을 잘 불러주지 않았었다는 사실이 떠오릅니다.
정류장에서, ‘버스가 도착하기 전’을 빼면 말이죠.
저 메시지에 따르면… 인도자는 수호.
인도를 받을 자는, 망자의 길에 들어선 자. 바로 당신임이 분명합니다.
당신은 옆에 있는 수호를 바라봅니다.
어찌된 일인지 수호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이제 마지막일텐데. 어째서.
당신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수호의 표정을 마주합니다.
그는… 기뻐보입니다. 동시에 슬퍼보입니다.
한편으로 어딘지 홀가분해보이는 눈으로 당신을 봅니다.
수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펼친 우산을 당신에게로 기울입니다.
수호의 어깨가 젖어듭니다.
그제야 그가 입고있는 옷차림이 눈에 들어옵니다.
까만 정장이네요.
꼭, 세상이 말하는 인도자..그래, 저승사자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산을 당신에게로 기울인 채 처연히 떨어지는 비를 맞던 수호는 나지막이 입술을 엽니다.
눈물같은 목소리가 허공을 가릅니다.
안수호:..좋은 밤이지?
그렇게 속삭인 수호가 당신에게로 손을 내밉니다.
사방은 어느새 컴컴해져있습니다.
안수호:목적지가 바뀌었어.
처음에 해줬던 말 있잖아.
도중에 길을 잃지 않도록, 네가 가야 할 목적지까지 내가 바래다 주겠다고 했었잖아.
건너편 정류장으로 넘어가자. 네게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어.
당신이 수호의 내민 손을 잡으면, 두 사람은 천천히 반대편 정류장을 향해 이동합니다.
발끝을 적시는 빗물은 기실 뜨거운지도, 차가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수호는 당신과 걸음 보폭을 맞추며 조심스레 말을 꺼냅니다.
안수호:내가 왜 네 앞에 나타났는지... 이제야 제대로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우선.. 거짓말해서 미안해.
이제 알지도 모르지만..여긴 네 꿈 속이 아니야.
1년 전 오늘, 너랑 내가 함께 타고있던 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진 트럭이랑 추돌하는 사고가 있었어.
너는 곧장 병원에 옮겨졌지만.. 1년 째 혼수 상태에 빠져있는 상태고...
그, 믿길지는 모르겠지만..
안수호:네가 죽음에 가까워지니까, 네 영혼을 노리는 존재들이 있다는 걸 알게되었어.
네 영혼을 안전하게 인도하고 싶어서.. 내가 무언가의 존재와 계약을 통해 얻게 된 힘이 바로 이 공간이야.
내가 정류장에서 네 이름을 부르게 되면, 영혼을 이끄는 버스가 도착하게 돼.
그렇게 총 세 번을 불러서, 우리가 세번째 버스를 타게 되는 순간... 내 역할은 끝나게 되는거였는데....
생각 이상으로 말이야, 네 이름을 부를 때마다 너무 괴로웠어.
두 번째 버스에서는 있지, 마지막으로 네 이름을 불러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까..
안수호:참을 수가 없을 정도로 괴롭더라고. (애써 웃으며)
그래서 나도 모르게 울적해진 티를 내버렸나 봐.
그런데, 이제 더 네 이름을 부를 필요가 없어졌어.
수호가 당신을 향해 희미한 웃음을 지어보입니다.
연시은:...왜...?
안수호:널 다시 현실의 삶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방법이 생겼거든.
그 국화꽃다발 말이야, 네 생명 그 자체를 뜻하는 매개체같더라.
곧 이 정류장에 너를 돌려보내 줄 버스가 도착할거야.
그 꽃다발을 들고 버스에 오르면, 넌... 다시 현실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거야.
수호가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두 사람은 건너편 정류장에 도착합니다.
모든 진상을 듣게 된 당신은.. 숨이 막혀옵니다.
억만겁의 슬픔 탓일까요, 아니면… 그렇게 말하는 너의 표정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기뻐 보여서 였을까요.
문득 수호의 어깨 너머로 희미한 불빛이 들어오는 전광판이 보입니다.
전광판의 메시지는 우리가 원래 앉아있던 반대편 정류장의 전광판 메시지와 그 내용이 상이합니다.
삶으로의 귀환. 삶으로 인도받을 자가 인도자의 이름을 부르면, 삶으로 향하는 생환 버스가 도착합니다.
전광판을 보던 당신은, 시선을 아래로 돌려 수호의 눈을 바라봅니다.
당신을 마주하는 수호의 눈가가 구슬피 빛나며 젖어들어가고 있습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목소리로, 수호가 말합니다.
안수호:이제, 네가 내 이름을 불러야 할 차례야.
내 이름을 불러줘.
이제는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당신이 수호의 이름을 불러야 할 차례입니다.
>수호의 이름을 부른다
>수호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연시은:(수호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아니. 난 부를 수 없어.”
“절대 부를 수 없어...”
끝까지 자신의 이름을 호명하지 않는 당신을 바라보는 수호의 표정은 절망감에 젖어들고 있습니다.
절망이라는 한 단어로 감히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절망, 슬픔, 애절함, 초조함, 두려움, 그리고 그 감정의 혼돈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애정의 말로.
안수호:......
안돼. 넌...
넌..돌아가야지.
연시은:네가, 네가 없는 세상에...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어?
안수호:그렇지 않아...
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어.
그 의미는 살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아..
연시은:아니, 없어...
네가 방법인데, 네가 없잖아.
수호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습니다.
삶으로 돌아갈 생환 버스의 라이트가 켜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차가 우리 둘의 앞에 나타나는 일도 없어요.
나는 버스가 필요없고, 수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니까요.
수호가 없는 삶에 돌아가봤자 더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앞으로 영원히 이 수몰되는 세계에 갇혀 영생을 걷게 될지라도 상관 없습니다.
연시은:미안해...
그래서, 온 몸이 닳아 없어질지라도 상관 없습니다.
내 곁에는, 수호가 있으니까요.
안수호:그게..네 결정인거지?
...그렇지, 시은아?
수호의 참지 못한 눈물이 줄줄이 고여, 점점 더 깊은 아래로 떨어져만 갑니다.
시은아. 수호가 마지막, 세 번째로 부른 당신의 이름입니다.
세 번째로 내 이름을 호명한 나의 인도자, 나의 구원.... 수호가 웃습니다.
안수호:우리, 마지막 버스... 타러 가자.
연시은:...그래.
고통스러운 듯, 묘하게 찡그린 얼굴로 나를 향해 웃습니다.
연시은:가자, 우리....
우리는 다시 반대편 정류장으로 되돌아갑니다.
죽음으로 향하는 마지막 버스에 올라탑니다.
툭.
품에서 떨어진 국화꽃다발이 빗물 속을 나뒹굽니다.
아니, 이제 더 이상 국화 꽃이라고 부를 수 없겠지요…….
져버린 꽃을 다시 주울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건 수호와 함께 가는 것을 선택한, 당신의 생명의 매개체. 당신 그 자체기 때문입니다.
연시은:수호야.
안수호:..응?
연시은:사랑해......
안수호:....
수호는 당신을 향해, 살아생전 지었던 것과 같은 미소를 지어보입니다.
삐―.
그와 동시에. 이젠 익숙해진 기계음이 귀를 울립니다.
늘 듣던 것 보다, 조금 더 길게...
.
.
.
END2. 이곳은 내 사랑이 수몰할 세상.
안수호 영구 로스트
연시은 로스트
.
.
.
-ED1-
당신을 마주하는 수호의 눈가가 구슬피 빛나며 젖어들어가고 있습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목소리로, 수호가 말합니다.
안수호:이제, 네가 내 이름을 불러야 할 차례야.
내 이름을 불러줘.
이제는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당신이 수호의 이름을 불러야 할 차례입니다.
>수호의 이름을 부른다
>수호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연시은:이건 정말... 잔인하다...(조용히 울음을 터뜨린다)
부르기 싫은데, 나는...
네가 해달라는 걸 해줄 수밖에 없잖아...
안수호:...진짜, 진짜 마지막 내 욕심이야.
(싱긋) 너라면.. 들어 줄 줄 알았어.
연시은:오늘이, 사무치게 후회될 날이 오겠지.
네 욕심을 저버리고 내 욕심을 내세울걸, 하고...
내 선택을 저주할 날이 올 테지만,
네가 웃으니까...
나는 후회하면서, 그리고 널 그리면서...
살아갈게.
연시은:네 인생을 함께 하듯 살게,
수호야...
"네 인생을 함께 하듯 살게."
"수호야."
당신은 떨리는 목소리로 수호의 이름을 부릅니다.
바람이 붑니다. 온전히 침체된 죽음의 여로 반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어깨가 젖어듭니다.
바람이 이렇게 세차게 불면, 우산도 소용 없는 법입니다.
그러니, 지금 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은 눈물이 아닌 빗물인 겁니다.
얼마 있지 않아 정류장 앞에 라이트를 켠 버스가 한 대 정차합니다.
버스의 번호는, 0131번.
안수호:있잖아, 이제 부를 수 있는걸까?
네 이름..
부르고 싶어.
하지만 혹여나 잘못 될까, 네가 다시 여기로 돌아올까...
망설여져서 부를 수가 없을 것 같아.
나..진짜 겁쟁이지?
그렇게 말하는 수호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잔뜩 젖어들어가 있습니다.
연시은:괜찮아.
나는... 네가 부르던 내 이름을 기억해.
네가 부르는 내 이름이
내 이름의 존재 이유처럼 늘 생각날 거야.
안수호:.......
버스의 출입구로 향한 당신은, 흠뻑 젖은 다리에 힘을 실어 그 위에 승차합니다.
연시은:수호야.
안수호.
안수호:응.
연시은:나는 네 이름을 이제, 닳도록 부를 수 있어.
안수호,
사랑해......
버스의 문이 닫힙니다.
당신은 급하게 뒷좌석으로 내달립니다.
창문을 열고, 우산을 든 채 당신을 올려다보는 수호와 두 눈을 마주합니다.
안수호:안녕.
나도 사랑해. 시은아.
연시은:또 보자,
수호야....
그렇게 말하는 수호에게 무어라고 답을 건네기도 전에 버스는 움직입니다.
수몰되는 세계에서, 수몰될 듯 슬프기만 한 버스가 빗길을 가르고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당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버스 안.
어떻게 견뎌내라는 걸까요. 수호 없이 혼자 남은 이 허망한 공간을.
이제 옆자리에 더는 네가 없는데, 너 없는 삶 속에서 나는 억겁같은 하루를 견뎌내며 살아가야 할 텐데…
넘쳐 흐르는 슬픔에 턱 끝에 맺힌 눈물을 훔쳐냅니다.
뺨 위로 꽃잎처럼 흩어지는 눈물을 닦아내고, 또 닦아냅니다.
입술 바깥으로 침잠되어있던 고통이 터집니다.
많이 보고싶을 거야.
아주 아주 많이, 네가 보고 싶을 거야. 안수호.
눈물에 흠뻑 젖어든 소매는 하얗습니다.
어느새부턴가 환자복 차림입니다.
무거이 내려간 고개에, 품에 안겨있던 국화 꽃잎 위로 시선이 떨어집니다.
까맣게 시들어있던 국화는 물기를 머금어 생생합니다.
다시 피어난 겁니다. 나의 삶을 향해 되돌아가는 이 버스 안에서 말이에요.
그리고, 생기가 돌아오던 국화의 색이 점점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수호와 함께했을 그 때, 정류장에서 보았던 표지판이 문득 떠오릅니다.
붉은 국화의 꽃말은,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당신은 품 한가득 국화꽃다발을 끌어안습니다.
.
.
.
삐. 삐. 삐.
익숙하고도 적막한 빗소리, 그 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희미한 기계음에 눈꺼풀을 떠올립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흰 천장. 소독약 냄새. 밝은 빛.
바뀐 목적지에 도착한걸까요.
이 곳이 바로, 수호가 인도해준 나의 목적지입니다.
놀란 간호사의 목소리, 커튼을 치고 급히 들어서는 의사의 얼굴.
난잡하게 흐드러지는 내 삶의 빛.
네가 없는 너의 기일.
내가 살아 돌아온 비내리는 밤의 병실.
눈가에 고여있는 뜨거운 물기 탓에 눈이 아픕니다.
가슴에 담기 벅차고, 감은 눈 아래 떠올리기 힘들고, 그 삶이 짧았기에 찬란했고 슬픈 이름이 있습니다.